“...나츠메군. 너에 비하면 너무 바보 같고 멍청한 나지만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저와 결혼해줄래요. 눈부신 햇살 아래서 함께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지내요. 똑같은 별을 보다 눈을 감고 잠들어요. 꼭 끌어안은 채로 하루를 다 쓰고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온종일을 보내요. 나츠메군 만의 파랑새가 되어 매일매일 귓가에서 행복을 속삭일게요. 평생 널 외롭지 않게 할게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 죽음이 우릴 가르게 되더라도 떨어질 수 없게 영원히. 영원히 나와 함께 행복해져요.”
츠무기는 귓불 끝까지 잔뜩 붉어진 채로 나츠메의 호박색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서로 눈을 맞춘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츠메는 한동안 말없이 츠무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 츠무기는 프러포즈에 대한 부끄러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당황스럽게 흔들리는 동공을 그대로 내비쳤다. 정적이 지나고 나츠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선배. 결혼은 아직 안될 것 같아.”
“아…. 네?”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너무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나? 항상 진심이었지만 이번엔 정말 사전까지 열심히 뒤져가면서 생각해온 말이었는데……. 츠무기는 나츠메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0.12초에 하나씩 머릿속에서 질문을 생성하며 온몸이 천천히 굳어갔다. 이대로 차이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츠무기였다. 이런 결말은 가끔 걱정하긴 했지만 현실로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나츠메같은 아이와 결혼까지 생각하다니 바보 같아… 아…. 역시 나는 너에게 어울리기엔 부족한 걸까요.’
츠무기는 금방 울상이 된 표정으로 여전히 나츠메의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오늘따라 그 호박색이 탁해 보이는 듯 했다. 나츠메는 유독 여유로워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그저 츠무기를 빤히 보고 있었다. 프러포즈에 놀라고 부끄러워하고 설레고 떨렸던 것은 오직 저뿐이었나 생각하자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츠메군, 미안해요. 나 혼자 그만 들떠서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인 줄 내가 또 착각을 했나봐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주면 안될까요? 정말 나는 너 없이 어떻게 사…….
“그게 무슨 소리야.”
“…네?”
다시 한 번 바보 같은 물음을 해버린 츠무기는 길게 뽑아 놓은 실타래 마냥 엉키다 못해 완전히 뒤섞여버린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희망의 끈이 지금 자신에게 내려온 건지, 아님 또 들뜬 나머지 헛것을 들은 건지. 자신이야말로 나츠메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기인 형들의 허락을 받아와. 오기인의 허락을 모두 받아오면 결혼해줄게.”
“네…. 뭐라구요?!”
이건 현실인건가. 어디선가 소라가 즐겨하던 게임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얼떨결에 오기인의 허가를 받아오게 생긴 츠무기의 심리상태는 이미 당황의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오기인 숙청까지 해본 츠무기는 과연 나츠메와의 결혼 허락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노오옹!! 절대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는 게야!!”
오랜만에 슈의 작업실에 찾아간 츠무기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앞에선 슈가 ‘농!’을 외치며 꼭 아침드라마의 시어머니라도 된 듯이 ‘나는 반댈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츠무기가 결혼의 ‘ㅎ’자를 입으로 뱉자마자 튀어나온 말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최종보스가 나온 것 같은데요.’
차라리 레이나 와타루를 먼저 설득하는 게 나을 성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슈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눈앞의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슈와의 관계는 함께 수예부 활동을 하던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슈는 여전히 츠무기에게 그다지 좋은 감정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츠메와 츠무기가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슈는 “애송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게야!” 라며 츠무기에게 전화로 소리쳤던 전적이 있었다. 원수에게 막둥이를 뺏긴 듯 한 심정이었을까. 나츠메의 설득에 어느 정도 이해해준 모양이었지만 츠무기에게 슈는 시어머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전히 나츠메군은 사랑받고 있네요! 이렇게나 걱정해주는 슈 군이라니.”
“흥, 여전한 건 오히려 아오바 네놈이라는 게야. 저렇게나 두꺼운 낯짝이라니 당치도 않군.”
“하하.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큰일이었다. 대화에서 타협점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허락은커녕 이대로 나츠메와의 결혼이 물 건너가기 직전이었다. 츠무기는 무슨 수를 써야 슈를 설득할 수 있을까 머리를 계속 굴려보았다. 꼭 피네의 책략가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 들어 쎄한 기분이 온몸에 서렸다. 지울 수 없는 업적이자 평생에 걸쳐 갚아나가야 할 업보이다. 그렇게 죽음의 맹세까지 했는데 이렇게 쉽게 장애물에 막혀버리다니. 과거의 내 다짐은 이토록 가벼운 것이었나.
‘제가 또 무슨 생각을……. 내가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그 애에게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지 모를 상처가 되었어요. 슈 군의 반대도 당연한 것이에요. 내가 이 반대를 무릅쓰고 나츠메군과 결혼할 자격이 있기는 한 걸까요…….’
“또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군.”
“…앗, 들켜버렸네요? 가끔 보면 슈 군과 나츠메 군은 닮은 구석이 많다니까요. 후후….”
정곡을 찌르는 슈의 말에 츠무기는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것뿐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말도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두꺼운 낯짝으로 잘도 허락을 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 번째일 뿐이었다. 아직 만나야 할 기인들이 남았고, 그 애와 함께 행복해져야 할 날들도 잔뜩 있었다. 허락을 받아낼 때까지 여기를 떠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슈를 설득해야만 했다.
“그렇게 머리 굴릴 필요 없다는 게야.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어떻게 같이 살겠다는 건지.”
“슈 군?”
“결혼… 허락한다는 거다. 으윽, 바보 같은 표정으로 기뻐하지 마라!”
“그렇지만 슈 군이 이렇게 저를 인정해 주다니 정말 기쁜걸요!”
슈는 쳇쳇거리며 아직 제대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츠무기에게 그런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이 들려와 말소리가 작아져가는 것 같기도 했다.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고 귓가에선 그 신나는 음악의 울림이 점점 커져갔다.
§§§
눈을 감았다 뜨니 츠무기의 눈앞에는 어느새 푸른색의 꽁지머리가 뽁하고 솟아있었다.
‘두 번째는 신카이 군인가요. 우우, 뭔가 어려워 보이는데요.’
차라리 슈와는 관계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더라도 같이 부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카나타는 달랐다. 같은 반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츠메와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면 졸업 후에 이렇게 둘이서 만날 일도 아마 없었을지 모른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니 아주 가끔 마주치거나 나중에 더 늙어선 동창회에서 인사정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부분에서 츠무기는 굉장히 오랜만에 대화에 아주 약간의 어려움(일반인에게는 거의 없다시피 한 정도의 어려움이지만 츠무기에겐 아주 드문 일)을 겪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신카이 군. 그동안 잘 지냈나요? 유성대는 여전히 여러 일을 하고 있죠? TV로는 자주 보고 있지만 이렇게 얼굴을 보긴 참 오랜만이네요. 나츠메 군과는 계속 연락하고 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 여긴 열대어카페라고 해서 신카이 군이 마음에 들어 할 거 같았어요! 듣던 대로 어항이 참 많네요!”
저가 이런 카페를 예약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입에선 준비라도 한 것처럼 대화가 청산유수로 나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처가에 결혼 허락을 맡으러 처음 아내의 형제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이 들 것이라 생각했다. 어딘가 어색한 이 기분. 유메노사키 재학 시절에도 그랬지만 카나타의 표정에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웬만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항상 웃고 있는 얼굴에서는 이렇다 할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츠무기는 오히려 슈보다 어려운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낫짱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말인가요?”
“앗, 네! 그렇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질문에 조금은 놀라버리고 말았다. 아, 역시 두 번째도 만만치 않구나. 츠무기는 기분 탓인지 괜스레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저는 낫짱의 『선택』이라면 믿을 수 있답니다. 그 애는 똑똑하니까요. 하지만 『파랑새』씨는 어떨까요? 『진심』으로 낫짱을 믿고 있나요? 믿고 있다면 왜 스스로 자꾸만 『증명』하려고 하나요? 계속해서 『의심』하고 『비하』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네요. 그건 『무엇』에 대한 의심인가요? 낫짱의 『선택』에 대한 의심인가요? 그런 거라면 저는 여러분의 『결혼』에 반대랍니다♪”
“…….”
완전히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는 말에 츠무기는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카나타의 말대로 반복적인 자신에 대한 의심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건 정말 나츠메군을 위한 길이었을까. 결혼 허락을 남에게 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위한 증명인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온갖 질문들이 물음표를 단 채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나 물음들이 난무할수록 또렷해지는 건 나츠메의 붉은색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매, 험한 말을 자주 하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입. 그뿐이었다.
“후후후…『파랑새』씨는 낫짱을 많이 『사랑』하고 있네요.”
“네! 다른 건 여전히 의문투성이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답니다. 저는 나츠메군을 정말로 사랑해요. 그 애의 파랑새로 남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게 설령 잘못된 일이라도. 아직은 이런 말밖에 못하는 저이지만요.”
“그렇다면 이제 저와는 헤어져도 괜찮겠네요.”
카나타의 말에 대답하려던 츠무기는 어느새 자리에서 사라진 카나타를 두리번 거리며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하늘색의 꽁지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놀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난 츠무기의 주변에서 다시 아까와 비슷한 음악소리가 울렸고 데자뷰처럼 눈 깜빡할 새에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세 번째네요! 세 번째는 레이군인가요. 가장 바쁠 텐데 저를 만나줄 시간이 되긴 하는 걸까요?’
오기인의 리더 격이었던 그는 이전에 만났던 슈와 비교했을 때 츠무기와 꽤나 괜찮은 사이임이 분명했다. 그런 점 때문인지 츠무기는 조금 긴장이 풀려 소파에 풀썩 기대어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네, 아오바 군.”
“오랜만이에요, 레이 군. 이 정도는 괜찮답니다. 비록 시킨 코코아를 다 마셔버리긴 했지만요.”
“하핫. 그 말투는 여전하구먼.”
“레이 군은 여전히 눈에 확 띄네요!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다 쳐다보던 걸요.”
오랜만에 만난 둘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 다던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던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츠무기는 나츠메와의 일에 대해서도 레이에게 거의 읊다시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거랍니다! 후후.”
“그렇구먼. 그렇다면 이 몸을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고? 이미 결혼까지 하기로 되어있는데 말일세♪”
“네……. 그러게 말이에요?”
츠무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나츠메에게 프러포즈를 했는데 거절당하고 나서 오기인의 허락을 받아오라는 말에 이렇게 기인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까부터 조금씩 느껴지던 기시감이 점점 짙어져 갔다. 되살아난 기억 속에선 나츠메가 수줍게 볼을 붉힌 채로 자신이 건네던 꽃다발을 받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츠무기 자신의 기억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만남들은 다 무엇이었던 것일까. 생각지도 못했던 의문이 감각을 덮쳐왔다.
“역시 자네는 눈치가 없구먼. 이때까지도 전혀 몰랐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라네. 하긴 허상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이 몸 또한 아오바 군이 만들어낸 거짓일 테니.”
“레이 군? 그게 무슨….”
“드디어 거의 다 왔구먼. 츠무기, 너는 충분히 괜찮은 녀석이니 말이야. 앞으로도 나츠메를 잘 부탁하네♪”
“우웃.. 머리가 아파요. 여긴 어디죠? 정말 마지막인가요? 그렇다면…….”
“정답입니다!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입니다! 후후후. 이런 곳에서 만남을 가지니 더 반가운 것 같군요. 선대 씨!”
“이런 곳이라뇨? 여긴 히비키 군의 연극 무대인걸요. 전에 나츠메군과 초대받아 온 적도 있고.”
그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와타루의 연극이 열리는 무대가 분명했다. 붉은색의 길고 커다란 천막과 까만 바닥, 무대 앞에는 수백 개의 관객석이 즐비해 있었다. 얼마 전 와타루의 초대로 나츠메와 츠무기가 공연을 관람하러 온 적도 있던 곳이었다. 그 날 히비키 군에게 줄 것이라는 명목으로 꽃다발을 챙겨놓았다가 공연이 끝난 후에 나츠메에게 건네며 프러포즈를 한 날이었기 때문에 츠무기는 그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진작 다 들켜서 서프라이즈고 뭐고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분명 제가 이 날 나츠메 군에게 프러포즈를… 했는데.”
“Amazing! 이제야 눈치를 채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거짓말! 즉 한편의 연극과 같았던 것이랍니다. 하지만 선대 씨에겐 꽤나 의미 있는 공연이었던 것 같군요……☆”
“그게 무슨 말이죠?”
“진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랍니다! 언제까지나 환상보다 아름다운 현실을 즐겨주세요! 그 아이, 나츠메 군과 함께 말입니다.”
“…….”
츠무기의 시야에서 모든 것이 점점 희미하게 흐려지고 온통 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와타루의 은발은 빛을 반사시키며 흩날리고 있었다. 너무도 강한 빛에 츠무기는 눈을 감아보아도 그 눈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대결 입니다! 평생에 걸쳐 이어질 이 게임보다 완벽한 현실에서 당신은 어떤 사랑을 보여주실 건가요. 후후후…….”
.
.
.
“선배……. 선배……. 츠무기형!”
“헉…….”
깊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자 붉은색의 긴 머리칼이 앞에서 살랑거렸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날렵한 턱선을 지나 오똑한 콧날, 호박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츠무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뒤로 물러났다.
“나츠메 군!”
“뭐야, 왜 이제 일어나는 건데. 다른 때는 해 뜨기 전에도 벌떡벌떡 잘만 깨서 돌아다니는 주제에.”
“네? 아….”
나츠메의 말을 듣고서야 조금 정신이 든 츠무기의 눈에 익숙한 천장과 벽지와 전등의 불빛이 들어왔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집의 안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나츠메가 열어놓은 창문에선 바람이 들어와 청색의 커튼이 휘날리고 있었다.
“뭐해, 빨리 일어나서 준비해. 오늘은 슈 형 작업실 가서 결혼식 의상 디자인 보기로 했잖아.”
“에엑… 슈 군의 허락은 이미 받아놨는데….”
“무슨 소리야 그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맞아요. 그랬었죠!”
이제야 오늘의 할 일이 떠오른 듯 츠무기는 자신의 위에 덮여있던 이불을 걷어 잘 개어 놓으며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나츠메는 그 모습을 보며 침대 앞에서 서성거렸다. 한참 망설이다가 서있는 츠무기의 앞으로 걸어가선 입술에 살포시 자신의 붉은 입술을 얹었다가 금방 떼어냈다.
“그… 이제 잠깼으면 빨리 가서 씻기나 해.”